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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주요묘역·시설물

주요묘역·시설물

국가유공자묘역에는 건국 후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외교, 안보, 과학 분야에서 국가 발전과 민족 번영을 위해 몸바친 국가유공자 총 68 위가 모셔져 있으며 총 4,959m²의 부지에 제 1, 제 2, 제 3묘역으로 나뉘어 조성되어 있다.

국가유공자 제 1묘역

제 1묘역에는 1983년 10월 9일 대통령의 버마(現 미얀마) 방문을 수행하여 아웅산 묘소에서 참배행사를 위해 정부요인들이 기다리고 있던 중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의 테러에 의해 순국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등 17위를 비롯하여 진의종 국무총리, ‘가고파’,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등의 시조와 국토순례기행문, 선열의 전기를 많이 써서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데 힘쓴 노산 이은상 시인, 한국근대사에 관한 집중적 연구를 통해 학계와 문화계에 큰 공헌한 사학자이신 이선근 박사 등 40위가 모셔져 있다.

국가유공자 제 1묘역1
국가유공자 제 1묘역2

국가유공자 제 2묘역

제 2묘역에는 일제 강점기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고, 광복 후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을 지낸 철기 이범석 장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차장 겸 광복군 참모장을 지냈으며 건국 후 외무부 장관을 역임한 김홍일 장군, 일제강점기에 조선물산장려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지도자 조만식 선생, 최초의 이학박사로 한국과학기술 발전에 큰 공을 세웠던 이태규 박사,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 등 14위가 모셔져 있다.

국가유공자 제 2묘역1
국가유공자 제 2묘역2

국가유공자 제 3묘역

제 3묘역에는 6·25전쟁 당시 베티고지의 영웅이었던 김만술 대위, 1968년 청와대를 폭파할 목적으로 잠입한 무장간첩단을 격퇴하기 위해 진두지휘하다 전사한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경무관, 항공기를 납북시키기 위해 기내에 던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쳐 승객 60여 명을 구출하고 순직한 전명세 기장, 최초의 여군 단장이었던 김현숙 대령, 세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농촌개발의 모델인 새마을운동을 체계화하고, 전 국민의 잘살기 운동으로 승화시킨 김준 초대 새마을운동중앙회장, ‘짧은 일생을 영원 조국에’란 인생좌표를 세우고 포스코로 ‘제철보국’을, 포항공대 등을 설립하고 ‘교육보국’의 이상을 실현하고 국무총리를 역힘한 박태준 총리, 한강의 기적’을 이끈 남덕우 국무총리, 일생을 외교분야에서 헌신하였던 전 외무부 장관 박동진 장관, 전 신민당 총재를 역임한 이철승 총재, 제21대 국무총리를 역힘한 강영훈 국무총리,제13대 국회의장을 지내신 김재순 국회의장을 포함하여 총 14위가 모셔져 있다.

국가유공자 제 3묘역
  • 김만술 대위
    김만술 대위 묘역

    육군 제1사단 11연대 2대대의 특무상사로 복무하다가 소위로 임관되어 1953. 7.15. 35명의 소대원을 이끌고 중공군 2개 대대와 맞서 적군 395명을 사살한 공로로 베티고지의 영웅이 되었다.
    베티고지는 1사단 전초기지로서 임진강 건너 연천북방에 자리잡고 있어 휴전을 앞두고 국군과 공산군은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곳이다.
    1953. 7. 15. 새벽 김만술 소위는 35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임진강을 도하하여 하오 2시 30분 베티고지에 도착, 다음날 새벽까지 18회에 걸친 접전 끝에 고지를 점령하고 태극기를 꽂았다.
    이날 결전에서 국군은 21명이 전사, 2명 부상하고 12명이 살아 남았다.
    김소위는 1947. 6. 국방경비대에 입대, 여순반란사건과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참가하였으며, 6.25전쟁 중에는 水原, 大田 방어전, 서부 전선 방어전 등 무수한 격전을 치렀다. 1960년 대위로 예편 1990. 7.이후 전상부위 재수술을 받는 등 투병생활을 하다 1991. 5.28. 사망, 제17묘역 상단(국가유공자 제3묘역) 4번 묘에 안장되어 있다.

  • 최규식 경무관
    최규식 경무관 묘역

    종로 경찰서장으로 근무중이던 1968. 1. 21. 22시10분경 “CIC대원이라 는 거동 수상자 30여명이 세검정에서 자하문쪽으로 도보 행진 중인데 검문에 응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고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 타격대 출동명령과 동시, 현장으로 달려가 괴한들의 앞을 가로막자 “우리는 CIC부대원들인데 훈련갔다 오는 길이다”고 소리치며 계속 밀고 내려오자 “나 종로서장인데 도대체 누구냐?”고 고함치면서 완강하게 진출을 막았다. 이때 괴한들이 최서장의 멱살을 움켜잡으려 하자 현장에 있는 대원들에게 괴한들을 무조건 체포하라는 지시를 하는 순간 뒤쪽에서 연이어 총소리가 나자 최서장과 맞서고 있던 괴한 1명이 뒤로 물러서며 외투 속에 숨겨둔 기관단총을 난사하여 최서장은 왼편 가슴에 3발을 맞았으나 권총으로 응사하면서 “수류탄이다, 엎드려”하고 전투지휘를 하다 전사하였다.
    특별지역을 관할하는 치안책임자로서 투철한 사명감과 호국정신의귀감을 보여 주었고 1968. 1. 25. 경찰청 장례로 제17묘역 5번 묘에 안장되었으며 그가 쓰러진 청운동 자하문 고개와 경찰종합학교 교정에는 동상을 세워 그의 높은 애국 충절을 기리고 있다.

  • 전명세 기장
    전명세 기장 묘역

    1932. 2.11. 만주 흥경에서 출생하여 1966년 육군대학을 졸업하였다.
    1961년 2군사령부 비행대, 1965년 항공학교 등에서 군복무를 하다가, 1970년 육군중령으로 예편하여 대한항공 (KAL) 조종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대한항공 조종사로 근무중인 1971. 1.23. 무장괴한이 항공기 납북을 기도하려고 기내에서 수류탄을 던지는 순간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승객 60여명을 안전하게 구출하고 장렬히 순직하였다.
    1등 보국훈장, 청룡봉사상(특별상), 5.16민족상(안보부문), 5등근무공로훈장 등 많은 수훈을 남겼으며, 국립묘지 제17묘역 2번 묘에 안장 되었다.

  • 김현숙 대령
    김현숙 대령 묘역

    김현숙 대령은 평양 출생으로 1934년 일본 동경 체육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강동여자중학교 체육교사로 근무하였다. 1946년 5월 여경훈련소 교관으로 한국 여자경찰 창설에 기여하였으며, 1949년 7월 여자배속장교 사감을 거쳐 예비역 소위로 임관되었다.

    그후 중앙 학도청년훈련소 교관으로 있으면서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 생포된 여자공비의 전향을 위해 참전하였다. 1950년 6·25사변이 발발하자 이승만(李承晩)대통령에게 여자의용군 모집을 건의하여 1950년 9월 1일 육군 제1훈련소 안에 여자의용군 교육대를 창설, 초대 교육대장으로 취임하였다.

    이 교육대에서는 여자배속장교 출신들을 교관으로 하여 여자의용군 1·2기 874명을 양성함으로써, 전쟁기간 동안 국군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하였다. 초창기 여군 창설의 주역들은 여자배속장교 출신으로 김현숙·박을희(朴乙姬)·현성원(玄聖元) 등 11명이었다.

    1950년 10월 23일에는 현역에 정식 편입하여 활동하였다. 1951년 11월에 육군본부에 여군과가 창설되면서 여군과장으로 보직되고, 편제개편에 따라 여군부장으로 있으면서 1955년 7월서울 용산에 여군훈련소를 창설하고 초대 소장직까지 겸무하였다.

    1953년 3월 한국 여군으로서는 최초로 대령으로 진급하였으며, 1960년 9월 초대 여군처장으로 전역하기까지 여군 창설과 발전의 주역이었다. 예편 후 공화당 부녀분과위원장을 거쳐 제8대 전국구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국립묘지에 국가유공자 제3묘역 안장되었다.

  • 김준
    김준 묘역

    김준 초대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 대한민국 새마을운동의 선구자시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교수를 지냈다. 농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농촌 운동에 뛰어들었다.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에서 정책적으로 추진한 새마을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다. 새마을운동중앙회 초대, 제2대, 제6대 회장을 역임하고, 1972년 초대 새마을지도연수원장을 맡아 새마을지도자 양성을 주도하였다. 새마을운동에 관한 한 박정희의 최측근으로 꼽혔다.[1] '새마을운동의 창시자'로 불리기도 한다.
    1980년에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공직에서는 물러났으며 국가보위입법회의에 들어가 사회단체 직능대표로 참여하였다. 이후 농촌 운동과 관련된 기고 및 강연 활동을 벌였다. 《은혜로 마음밭을 갈며》 등의 저서가 있다.
    김준은 '맨발의 성자'로 불린 종교운동가 이현필의 제자이다. 이현필 방식의 자선과 나눔의 삶을 김준이 그대로 새마을운동에 도입했다는 평가도 있다. 국가유공자 제3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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