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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주요묘역·시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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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 묘역 소개

  • 글번호O_191018
  • 작성자현충원
  • 조회수465
  • 등록일2018.05.15 10:41:05
tab1개요 및 안장 현황
개요 및 안장 현황

제24묘역은 6․25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전사자와 60년대 순직자를 모시기 위해 조성된 묘역으로 장교, 부사관, 사병, 군무원, 종군자 등 총 1,791위가 안장되어 있다.


안장현황
연도 6・25전쟁중 '54~'59 ‘60~’69 ‘70~’79 기타
사망 1,791 1,068 21 540 33 129
안장 1,791 - 1,181 558 46 6
tab2안장배경
안장배경

금화전투


미국 8군의 공산군 공세에 대한 제한된 공격작전의 일환으로 저격능선을 공격하게 된 대한민국 2사단 제17연대, 제31연대, 제32연대와 배속된 제30연대, 제37연대가 16개 포병 대대의 포격 지원 아래 1952년 10월 14일 5시 정각에 공격을 개시하여 중국 인민해방군 7개 연대(제133연대, 제143연대, 제135연대, 제86연대, 제1387연대, 제92연대, 제106연대)가 11월 24일까지 6주간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진지를 사수했다.

저격능선 전투(狙擊稜綫戰鬪, 영어: Battle of Sniper ridge)는 한국 전쟁이 고지전으로 변하여 교착되었던 1952년에 중부전선의 김화(현재의 철원군 김화읍 주변)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대한민국 2보병사단이 중공군 15 군에 맞서, 주저항선 전방의 전초진지를 빼앗기 위한 공방전을 벌인 지역으로 김화 북방 7Km지점에 위치한 저격능선으로서 철의 삼각지대 중심부에 자리잡은 오성산에서 우단의 김화지역으로 뻗어내린 여러 능선 가운데 남대천 부근에 솟아오른 돌출된 능선이다. 그 해발고도는 590m정도이고 능선의 크기는 1㎢정도의 장방형 능선이다.

저격능선이란 이름은 1951년 10월. 당시 노매드(Nomad)선을 목표로 진격작전을 전개한 미국 25 보병 사단이 김화지역으로 진출하여 중공군 2군과 대치할 때 중공군이 538고지로 진출한 미군을 저격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고 미군 병사들은 이 무명능선을 가리켜 스나이퍼 리지'라 불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1.21사태


1968. 1. 21.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 암살지령을 받고 한국군의 복장과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야간을 이용하여 휴전선을 넘어 수도권까지 잠입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세검정고개의 자하문을 통과하려다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정체가 드러나자 검문경찰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하는 한편, 그곳을 지나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귀가하던 많은 시민들을 살상하였다. 군⦁경은 즉시 비상경계태세를 확립하고 현장으로 출동하여, 28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였다.



기타


ㅇ 1968.1.22. 경기 파주 법원지점에서 대간첩 수색 및 방어임무를 수행 중 1. 24. 08:00경 수미상의 무장간첩이 동지점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고 포위망을 구축하고 좁혀가던 중 적의 흉탄에 맞아 전사

ㅇ 1968. 5. 8일 중대막 방벽을 만들기 위해 강원 춘성 고탄에 갔다가 19:30분경 운전미숙으로 높이 30M 벼랑에서 전복 추락하여 순직

ㅇ 1968.6.22. 08:35경 무장간첩 도주로 봉쇄하고 정밀수색을 실시하던 중 적 1명과 약 2m까지 접근 교전중 적탄에 맞아 전사

ㅇ 1968.7.23. 08:00경 512GP 좌측 지점에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은신중인 적 5명의 기습을 받고 교전중 현장에서 전사함

tab3추모의글
추모의글

국방부 병무국장 군무관리관 백형채(4판9호)


여기 그의 반생을 병무행정에 이바지하여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저서를 편찬하는 도중에 애석하게 숨져간 선비가 누웠으니 그 이름 잊지 못할 백형채 선생이시다.

창군 이래 병무행정에 몸을 바쳐 십팔개 성상, 열 두분의 장관이 교체되는 동안 한결같이 이 길에 정진하여 그 사무체계를 확립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우시었다.

그가 신병으로 입원 치료하는 동안도 그의 맡은 업무를 쉰 적이 없었고 하루 바삐 그 출판이 고대되는 병무편람의 편찬을 병석에 누워서도 쉬는 적이 없더라.

슬픔아! 그의 간행을 보기 직전 1967년 11월 10일 홀연히 별세하시니 향년 54세이시였다.

유순한 외모에 강직한 성격은 일급 문관으로서 장군의 대우를 받는 관록과 부합되어 주위의 높은 추앙을 받으시었다.

이 나라 공무원의 귀감으로 그의 공을 기려서 길이 빛내고자 하기에 이 비를 세우는 바이다.

- 1968년 5월 11일, 글비 한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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