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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3

제8회 애국보훈선양대회 소감문(대상 1)

작성일
2016.09.27
수정일
2016.09.27
작성자
현충원
조회수
1447

제8회 애국보훈선양대회 대상 소감문

 

한국청소년봉사단연맹 강남지구 경기여자고등학교 한ㅇ희

 

더운 일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봉사하러 갈 준비를 시작했다. 샤워하고 나서 빵 한 조각 입에 물고 엄마 차타고 와서 현충원에 드디어 도착하였다. 사람이 많아서 현충관에서 친구랑 같이 2층 계단에 쭈그려 앉아서 강의를 들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주 인물로 PPT가 흘러갔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서 엿 하나 사기 위해서 숟가락을 구부리고 아버지의 비상금을 훔쳐 간 김창암은 여느 어린이랑 다를 게 없다. 김창암은 12살이 되는 해 철이 드셨고 과거 공부를 하셨다. 하지만 과거 공부를 했는데도 과거 시험에 떨어졌다. 김창암의 아버지는 이런 창암을 보고 좋은 사람을 사귀라고 관상공부를 시켰다. 김창암은 관상공부를 하면서 자기 얼굴을 관찰하게 되었는데, 눈도 와이셔츠 단춧구멍과 유사하고 하관은 툭 튀어나온데다가 얼굴 여기저기에 검은 점이 수두룩하다. 김창암은 일명 ‘곰보’였다. 하지만 그는 외양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착한마음’을 수양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이 말은 정말 공감된다. 아무리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라고 해도 성격이 좋지 않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정이 뚝 떨어진다.

그의 영원한 스승 고능선 선생님은 그를 가르치셨는데 나도 누군가 ‘평생 기억하고 싶은 스승이 있어?’ 라는 질문을 받으면 있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나에게 큰 도움을 주셨다. 학교생활이 힘들어질 때마다 상담해주셨고, 옆에서 열심히 응원해주셔서 1학년 생활을 열심히 해서 오늘의 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창암은 나중에 서대문 감옥 가셔서 이름을 ‘백범 김구’로 바꿨다. 이 이름이 오늘날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이름이다. 백범은 백정 범부를 뜻하는데, 백정은 가장 천한 직업을 뜻하고 범부는 평범한 사람을 뜻한다. 이 강연에서 대한민국 내 꺼라는 말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이 말을 더 깊이 파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내 꺼니까 내 꺼인만큼 더 소중히 다뤄야한다는 뜻이 숨어있는 것 같다. 나도 이제부터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주인이 되어야겠다!

현충관에서 발표를 들은 뒤에 두 줄로 서서 현충문을 지나서 현충탑 앞에서 고개 숙이고 묵념하였다. 탑 아래 위패봉안관으로 들어가서 6.25전쟁 당시 전사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수많은 호국용사들의 위패와, 시신은 찾았으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용사들의 유해가 모셔진 곳을 돌아봤다. 수많은 이름들을 지나고 그 밑에 그 용사들의 가족들이 갖다놓으신 꽃과 짧은 편지들을 보면서 마음 한 쪽이 찡했다. 부모들이 자기 아들이 전쟁 나가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슬픔을 느꼈겠지만 그런 자신의 자식이 너무 자랑스러웠을 것 같다. 이곳에서 한 바퀴 돈 뒤에 또 두 줄을 서서 걸어 나섰다.
 애국지사 묘역을 지나 무후선열제단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애국지사 중 후손이 없거나 유해를 찾을 수 없는 순국선열이 위패로 봉안된 곳이다. 이곳에 유관순 열사도 위패로 모셔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같은 여성으로 과거에 그렇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너무 자랑스럽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 중 한 명인데, 그 인원수가 적은 만큼 더 돋보이고 빛나는 것 같다. 나도 후세에 기억 남는 여성이 되고 싶다!

다음으로 이승만 내외분 묘소를 지나갔다. 학교에서는 그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만 들었는데 그분도 위대한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독립협회에 참여하셔서 독립사상을 전파하셨고, 3.1운동 이후 상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시고 해외로 넘어가셔서 항일투쟁 외교활동을 펼치셨다. 그는 해방직후의 카오스를 극복하고 자유민주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셨다. 4.19혁명으로 하야하시고 나서 하와이에서 서거하셨다.

좀 더 걸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에 갔다.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DJ!'라고 하셔서 친구들이랑 웃은 일이 기억난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연속된 정치적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유, 평화를 중요시하며 정치를 하셨다. 취임하신 후 외환위기를 극복하셨고 우리나라에게 남북정상회담으로 평화를 가져다주셨다. 그의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셨다.

마지막으로 현충관으로 돌아가기 전에 장병묘역에 들려서 6.25전쟁, 베트남전 등에서 전사하신 호국영령들을 보고 왔다. 생각보다 묘들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했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다. 이분들 덕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전쟁도 일어나지 않고 총 맞아서 죽을 걱정 없는 이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이분들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오늘 설명하신 분께서 오늘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설명도 다 못하고 시간도 부족해서 몇 군데 건너뛰었다고 하셨는데, 다음에 또 와서 더 천천히 공원을 둘러보고 싶다. 더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만큼 우리는 자부심을 갖고 그들의 이름을 100년, 200년 후에 살 후손들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연결고리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다.

이곳에 묻힌 위인 모두 감사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보관하고 있다가 후손들에게 넘겨주겠습니다.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고 하늘에서 자랑스러워하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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