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金載根)1894. 1. 9 ~ 1964. 3. 7

  • 안장지역서울
  • 묘소위치독립유공자묘역 1
  • 출생지역강원도 김화
  • 사망지역 서울
주요활동 및 공적사항
    • 1894년 강원도 김화에서 태어났다.

    • 수원농림학교에 다니던 중 1915년 일제를 배척했다고 하여 퇴학당하였다.

    • 1919년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며 3・1운동의 시위 대열에 참가했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 같은 해 8월 보석으로 출감한 김재근은 평소 잘 알고 지냈던 권인채(權仁采)로부터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취지와 목적을 듣고 가입하였다.

    •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신현구(申鉉九)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 중국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단체였으며,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의 선전과 재정자금 조달 및 국내 조직망을 통한 임시정부 연통부(聯通府)의 역할 등을 주로 담당했다.

    • 1919년 8월 9일 강원도 철원으로 내려가 박연서(朴淵瑞)・강대려(姜大呂)・김철회(金喆會)・박건병(朴健秉) 등과 함께 대한독립애국단의 취지와 목적을 알리고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을 조직하도록 했다.

    • 그리고 박연서(朴淵瑞)에게 서울의 본부와 연결되도록 소개장을 써주는 한 편, 철원애국단을 발판으로 강원도 지역에서 조직적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 하지만 1920년 1월말 강원도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체포되어 1921년 3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 감옥을 나온 후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1928년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를 졸업하고, 교직생활을 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 고등만몽학교(高等滿蒙學校)를 다녔다.

    •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일화ㆍ어록

    • ......독립만세 또는 만세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거기에서 나는 독립이 된 것으로 생각했다....... 경찰관도 최초에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보고만 있었으므로 독립했다고 생각했다. 하여튼 나는 독립선언이 있었으므로 독립했다고 생각했고, 또 군중은 기쁨에 넘쳐 만세를 불렀다. - 「김상덕 신문조서」, 경성지방법원, 1919년 4월 8일(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5,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