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 5, 8, 9번 묘역과 7번 묘역의 일부에 전사·순직한 경찰관을 안장하고 있으며 이곳을 경찰관 묘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경찰관 묘역은 총 1만 109m²의 부지에 조성되어 있으며, 전사·순직한 경찰관 839위가 안장되어 있다. (2021년 3월 말 기준)
6·25전쟁 이전 전사자는 1948년 10월 20일 여수·순천사건 당시 전사한 한운경 총장 등 69위이며, 6·25전쟁 중 전사자는 1951년 9월 19일 전남 구례 토벌작전 중 전사한 김기옥 경위 등 439위이다. 6·25전쟁 이후 전사자는 1975년 6월 28일 전사한 전투경찰대 소속 이무석 경사 등 329위이다.
경찰관으로서 최초 안장자는 무장간첩과 교전 중 전사한 계용훈 경위와 진덕수 경사이며, 1965년 7월 21일 5번 묘역 3판106호 및 8번 묘역 2판 124호에 각각 안장되었다. 이곳 경찰관 묘역에는 6·25전쟁 당시 강원 영월 화력발전소를 사수하다 전사한 김해수 경감, 전남 곡성 태안사 전투에서 전사한 주순철 경감 등이 안장되어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이들 경찰관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뜻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찰관 묘역 위쪽에 경찰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경감 김해수의 묘 (5번 묘역)
강원도 영월 중석광업소 경비대장 근무시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7월 8일 영월읍 화력발전소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48명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경무장 후 부대 이동 중 녹전리 슬고개에서 인민군 차량 이동부대와 조우하였고 치열한 전투로 적 73명을 사살하고 김해수 대장 등 23명이 전사하였다.
이들 전사자 23명은 1960년 10월 영월군 상동읍 녹전리 산 137에 건립된 합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합동묘지는 1980년에 새롭게 단장하고 강원지방 경찰청장이 매년 7월 8일 추모행사를 갖고 있다. 이들 가운데 김해수 경감은 1976년 4월 30일 이곳 제5묘역(116호)에 이장되었다.
경감 주순철의 묘 (5번 묘역)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 후 국군의 전략적 전선 이동에 따라 전남 곡성경찰서(서장 한정일 총경)의 서장 외 329명의 경찰관들은 지역 사수를 결의하고 태안사 방어진지 구축, 전방 작전지휘소 설치 등 만전을 기하면서 국지적인 유격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1950년 7월 29일 곡성군 압록교 근방에서 북한군 603 기갑연대가 야영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전 병력이 포위망을 형성하여 밤 12시 30분을 기해 집중 화력을 퍼부으면서 선제공격에 들어가 4시간 만에 사살 52명, 생포 3명, 트럭 등 물자 80여 점을 노획하는 등의 혁혁한 전과를 올리면서 아군의 방어 작전 준비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1950년 8월 6일 새벽녘에 북한군 주력부대의 기습공격을 받아 치열한 격전 끝에 48명의 전우와 함께 주순철 경감(삼기지서장, 당시 경위)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태안사 전투를 기리기 위해 1960년 8월 6일 태안사 경내에 충혼탑을 건립하였다. 1983년에는 태안사 경찰전적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1985년 8월 6일 태안사 아래에 호국관과 충혼탑 건립을 완공하였다. 전남지방경찰청은 매년 8월 6일 조국의 수호신으로서 젊음을 불사른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위령제를 주관해 올리고 있다.
주순철 경감은 1983년 9월 28일 국립서울현충원 제 5묘역 3판 207호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