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번호
- 5267
제 22 묘역 소개
- 작성일
- 2018.05.15
- 수정일
- 2022.02.08
- 작성자
- 현충원
- 조회수
- 1136
개요 및 안장 현황
제22묘역은 6.25전쟁중 전사하신 분들을 모시기 위해 조성된 묘역으로 총 389위가 모셔져 있다.
연도 | 계 | 6・25전쟁중 | '54~'59 | 기타 |
---|---|---|---|---|
사망 | 389 | 347 | 16 | 48 |
안장 | 389 | - | 383 | 6 |
안장배경
연천전투
1950년 10월 8일 국군8사단 제 10연대는 여명을 기하여 일제히 공격을 시작하였다. 제50포병대대 전 화력은 38°선상의 적진지를 맹타하기 시작하였고, 보병부대들은 앞을 다투어 적진 전면을 돌파함으로써 전곡리까지 돌진하였는데, 적은 전곡리에서 서쪽으로 만지리를 경유, 임진강 줄기를 따라 패주하면서도 전곡리에서 연천에 이르는 국도 양쪽의 요지를 확보하고 계속 저항하고 있었다. 이때 8사단은 제10연대와 제21연대가 연천 동쪽 통현리 부근까지 진격토록 하고, 제16연대는 전곡리에서 공격부대의 뒤를 따라 서서히 전진토록 하면서 좌우 측방의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하였다.
제10연대와 제21연대는 통현리까지 진격하였으나, 적은 연천 동쪽과 서쪽고지 일대에서 완강히 저항하므로 피아간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날이 어둡게 되자 곧 적의 총성은 잠잠하여지고, 사단은 다시 수색대로 하여금 연천 주변의 적정은 수색토록 하였다.
1950년 10월 9일 제10연대는 연천 서북쪽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정면으로 돌파하여 육박전을 전개하였는데, 적은 수세를 만회할 기회가 꺾이자 곧 서북쪽으로 임진강을 건너 패주하기 시작하였고, 제21연대는 동쪽 고지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적을 일격에 격파하고 적을 철원 쪽으로 격퇴시켰다.
군속 김건일[22묘역 1판 1855호]
1968.12.4. 피교육생 야외훈련 통제요원으로서 제2통제지점으로 이동하던 중 경기 용인 구성 고정리 고속도로(CS325 314)를 횡단하던 현대건설 작업차와 충돌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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