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번호
- 5274
제 15 묘역 소개
- 작성일
- 2018.05.15
- 수정일
- 2022.02.08
- 작성자
- 현충원
- 조회수
- 2139
개요 및 안장 현황
제15묘역은 6.25 전쟁으로 사망하신 육군 장교 865위를 모시기 위해 8개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 6판 432호에는 6.25참전 소년전차병 박승일 소위가 안장되어 있다.
연도 | 계 | '50년 이전 | 6・25전쟁중 | '54~'59 | ‘60~’69 | ‘70~’79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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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865 | 1 | 722 | 115 | 4 | 2 | 21 |
안장 | 865 | - | - | 853 | 9 | 2 | 1 |
안장배경
금화전투
미국 8군의 공산군 공세에 대한 제한된 공격작전의 일환으로 저격능선을 공격하게 된 대한민국 2사단 제17연대, 제31연대, 제32연대와 배속된 제30연대, 제37연대가 16개 포병 대대의 포격 지원 아래 1952년 10월 14일 5시 정각에 공격을 개시하여 중국 인민해방군 7개 연대(제133연대, 제143연대, 제135연대, 제86연대, 제1387연대, 제92연대, 제106연대)가 11월 24일까지 6주간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진지를 사수했다.
저격능선 전투(狙擊稜綫戰鬪, 영어: Battle of Sniper ridge)는 한국 전쟁이 고지전으로 변하여 교착되었던 1952년에 중부전선의 김화(현재의 철원군 김화읍 주변)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대한민국 2보병사단이 중공군 15 군에 맞서, 주저항선 전방의 전초진지를 빼앗기 위한 공방전을 벌인 지역으로 김화 북방 7Km지점에 위치한 저격능선으로서 철의 삼각지대 중심부에 자리잡은 오성산에서 우단의 김화지역으로 뻗어내린 여러 능선 가운데 남대천 부근에 솟아오른 돌출된 능선이다. 그 해발고도는 590m정도이고 능선의 크기는 1㎢정도의 장방형 능선이다.
저격능선이란 이름은 1951년 10월. 당시 노매드(Nomad)선을 목표로 진격작전을 전개한 미국 25 보병 사단이 김화지역으로 진출하여 중공군 2군과 대치할 때 중공군이 538고지로 진출한 미군을 저격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고 미군 병사들은 이 무명능선을 가리켜 스나이퍼 리지'라 불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민혜동 중위[15묘역 4판 401호]
1951년 11월 3일 중공군의 대대적인 기습공격을 받고 빼앗긴 281고지(백마고지 서쪽 4Km)를 탈환하기 위해 적의 측면을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고 선두에서 빗발치는 적의 총탄세례를 뚫고 정상에 올라 적군의 기관총 진지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장렬히 산화했다.
최병익 중위[15묘역 2판 732호]
1952년 9월 21일 밤 북한군이 705고지 일대를 확보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세를 펴자 그는 병력과 화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선두에서 백병전을 독려하면서 분전했으나 북한군이 던진 수류탄에 맞아 전사했다.
김왕호 소령[15묘역 7판 254호]
사단의 전초 기지였던 우두산 일대의 748고지(피의 고지)는 적에게 빼앗길 경우 사단의 주저항선이 위협받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곳의 중요성을 간파한 중공군은 52년 9월28일 우세한 병력으로 파상 공격을 감행, 인접 중대인 제1대대 1중대의 방어 진지선을 돌파하여 748고지를 빼앗겼다. 아군은 이를 재탈환하기 위해 2차에 걸쳐 3개 중대 병력을 투입했으나 실패하고 역습공격을 3중대장 김왕호 소령에게 지시한다. 정면 공격 방법으로는 고지탈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적 2개 중대가 방어하고 있는 주진지의 배후로 목숨을 걸고 기습 돌격을 감행해 정면으로 들어가는 아군과 함께 전략 요충지 748고지를 탈환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이순호 소령[15묘역 4판 378호]
강원도 양구군 백석산 전방 '크리스마스 고지'는 195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로부터 4일간 피어린 전투를 했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으로, 당시 7사단의 전선 중 최북단에 위치한 돌출진지로 적의 주저항선인 어은산으로 통하는 요충지 중의 요충지였다. 1952년 10월 13일, 수적으로 우세한 중공군 제 604연대가 수백발의 포탄을 퍼부으며 크리스마스 고지를 공격해 왔지만 치열한 혈전을 벌여 진지를 고수하고 그 자신은 안타깝게 산화하고 말았다.
6.25 참전 소년전차병 : 박승일 소위[15묘역 6판 432]
소년병은 병역의무가 없는 만 17세 이하의 아동들로 정규군에 참전한 자를 말하며 6.25전쟁시 낙동강 방어 전투에 참가하기 시작하여 전쟁 전 기간에 주요 전투에 참가하여, 전쟁이 종결된 이후까지 조국 수호를 위해 헌신한 ‘잊혀진 전사’들이다.
징집 대상자가 아니었음에도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약 3만명이 참전하였고 그중 2,573명이 고국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쳤다. 그 중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위패로 1,709위, 묘소에 254위, 충혼당 1위 등 모두 1,964위를 모시고 있다.
1953년 서부전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고 박승일 소위는 제57독립전차중대 소속 소대장으로 휴전 직전 치열했던 베티고지 방어 작전에서 근접 지원사격하다 1953년 5월 16일 전사하여 15묘역 6판 432호에 안장되어 매년 5월 15일경 추모식이 개최된다.
추모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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