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번호
- 5277
제 12 묘역 소개
- 작성일
- 2018.05.15
- 수정일
- 2022.02.08
- 작성자
- 현충원
- 조회수
- 1534
개요 및 안장 현황
제12묘역은 강혜림, 위쉬팡 등 외국인 2위와 6.25 전사자, 종군자 및 군무원 등 총 359위를 모시기 위해 조성된 묘역이다.
연도 | 계 | 6・25전쟁중 | '54~'59 | ‘60~’69 | ‘70~’79 | ‘80~’89 | '90~'99 | 기타 |
---|---|---|---|---|---|---|---|---|
사망 | 359 | 168 | 14 | 1 | 137 | 34 | 1 | 5 |
안장 | 359 | - | 15 | 61 | 240 | 41 | 1 | 1 |
안장배경
금화전투
미국 8군의 공산군 공세에 대한 제한된 공격작전의 일환으로 저격능선을 공격하게 된 대한민국 2사단 제17연대, 제31연대, 제32연대와 배속된 제30연대, 제37연대가 16개 포병 대대의 포격 지원 아래 1952년 10월 14일 5시 정각에 공격을 개시하여 중국 인민해방군 7개 연대(제133연대, 제143연대, 제135연대, 제86연대, 제1387연대, 제92연대, 제106연대)가 11월 24일까지 6주간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진지를 사수했다.
저격능선 전투(狙擊稜綫戰鬪, 영어: Battle of Sniper ridge)는 한국 전쟁이 고지전으로 변하여 교착되었던 1952년에 중부전선의 김화(현재의 철원군 김화읍 주변)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대한민국 2보병사단이 중공군 15 군에 맞서, 주저항선 전방의 전초진지를 빼앗기 위한 공방전을 벌인 지역으로 김화 북방 7Km지점에 위치한 저격능선으로서 철의 삼각지대 중심부에 자리잡은 오성산에서 우단의 김화지역으로 뻗어내린 여러 능선 가운데 남대천 부근에 솟아오른 돌출된 능선이다. 그 해발고도는 590m정도이고 능선의 크기는 1㎢정도의 장방형 능선이다.
저격능선이란 이름은 1951년 10월. 당시 노매드(Nomad)선을 목표로 진격작전을 전개한 미국 25 보병 사단이 김화지역으로 진출하여 중공군 2군과 대치할 때 중공군이 538고지로 진출한 미군을 저격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고 미군 병사들은 이 무명능선을 가리켜 스나이퍼 리지'라 불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종군화교 강혜림[12묘역 1판]
중국 화교로서 평양에 거주하여 오던 중 1950년 11월 중공군이 6.25전쟁에 개입하자 자진하여 우리 육군 1사단 15연대에 종군, 적정수색과 포로 심문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1. 2. 2. 경기도 과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이 분의 유해는 동지들에 의해 부산 화교 소학교에 임시 안치되어 있었는데 자유중국 대사관과 전우 화교들로부터 군묘지에 안장하여 줄 것을 요청받고 정부에서는 1964. 11. 13. 제110회 국무회의에서 국립묘지에 안장할 것을 의결, 1964. 12. 12. 국립묘지 제24묘역에 안장하였다. 그 후 외국인으로써 6.25전쟁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운 유공자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널리 홍보하기 위해 2012.5.15. 12번 묘역으로 묘소를 이전하고 위쉬팡과 함께 별도로 묘소 조성하게 되었다.
이 분은 생전의 공적으로 1959. 6. 1. 은성 화랑 무공훈장을 추서 받았으며 화교의 사기 앙양과 우방국과의 유대강화를 위하여 우리 전몰용사와 같은 대우로 국립묘지에 안장하게 된 것이다.
종군화교 위쉬팡[12묘역 1판]
45년 중국 안동성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자유중국군 대위로 근무하던 중 48년 국공내전에서 자유중국이 대만으로 퇴각하고 만주지역이 공산화되자 신의주에 귀향후 평양근처 장산탄광 광부로 취업하여 한·중 애국청년단을 조직하고 활약하였다. '50. 10. 국군 평양 진격시에는 보병 제1사단 수색대에 편입, 적정수색과 첩보활동 및 중공군 포로 심문 등을 실시하여 화랑무공훈장을 수여 받았다. 휴전 후에는 한의사로서 극빈 환자 무료진료, 장학사업 등 국가사회발전에 기여하다 '89. 6. 29. 세상을 떠났으며, '89. 12.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90. 3. 20. 서쪽 12-1번 묘역에 안장된 후 강혜림과 함께 2012.5.15. 12번 묘역으로 묘소를 이전하였다.
기타
ㅇ 1973.2.13. 정기 강하훈련 중 A-4번 비행기에 탑승하여 강하구령에 따라 낙하중 돌풍으로 13:23분경 한강에 수중 낙하되어 사망
ㅇ 1973.3.29. 정기 부대강화훈련 중 동시에 뛰어내려 낙하산이 80%정도 퍼졌을 때 낙하산과 엉킨 채 추락하여 동시 사망
ㅇ 1973.4.29. 유격훈련교육대에 입교하여 1973.5.1. 16:30부터11Km 구간에서 우천으로 옷이 젖고 허기와 추위로 되돌아가다 동일 17:30분경 노상에서 졸도하여 엠블런스 후송도중 저체온으로 순직
ㅇ 1973.5.3. 소대장 지시에 따라 남방 약 150m 떨어진 70도 급경사지 소로에 바리케이트 계단을 만들던 중 잔디를 운반코저 우측발을 1보 내딛는 순간 대인지뢰를 밟아 폭발
추모의글
육군 이등중사 최영빈(1판999호)
총탄이 비 퍼붓 듯하는 백마고지전투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장열히 산화한 훌륭한 내아들! 영빈아 장하다 이 에미는 평생을 살면서 한시도 잊은 적이 없구나. 사랑하는 자식의 영혼을 위로 안장하고자 기도하노니 내내 평안히 잠들기를
- 첨부파일
- 첨부파일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