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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주요묘역·시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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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

  • 글번호O_48123
  • 작성자현충원
  • 조회수3186
  • 등록일13.06.26 12:00:00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게시물의 첨부이미지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게시물의 첨부이미지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게시물의 첨부이미지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좌측으로 하나의 위령탑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학도의용군 무명용사 위령탑이다.
이 탑은 1954년 10월 30일 지금의 현충탑 자리에 “무명용사비”란 이름으로 건립되었으며, 1956년 1월16일 대표 무명용사 1위를 뒤쪽에 있는 반구형 봉안함에 안장하면서 '무명용사탑'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후 1967년 9월 현충탑 뒤편 위패봉안관 지하 무명용사 봉안실이 건립되자 대표 무명용사 1위와 묘역에 안장되어 있던 무명용사 총 5,757위를 지하 무명용사 봉안실로 옮기고 무명용사탑을 현재의 위치로 이설하였다. 그러고나서 1번 묘역에 안장되어 있던 학도의용군 48위를 탑 뒤에 있는 반구형 봉안함에 안장하면서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으로 다시 고쳐 부르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약 5만명으로 추산되는 학생들이 구국전선에 뛰어들어 포항 지역을 비롯한 각 지구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7,000여 명이 전사하였다. 그러나 그들 시신이나 무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포항전투에서 중대급(48명) 규모의 학도의용군이 북한군 전초 부대를 맞아 분투하다가 전몰, 포항여자중·고등학교 부근에 가매장되어 있었다. 이들을 1963년 9월 24일 국무회의에서 국군묘지에 안장할 것을 의결함에 따라 1964년 4월 25일 '대한학도의용군 동지회' 주관 아래 국군묘지 1번 묘역에 안장하였다가 1968년 4월 현재의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에 이장하게 되었다. 3개의 아치 문형으로 구성된 이 탑은 중앙의큰 문형 안에 무명용사탑이 세워져 있고, 탑 뒤쪽 중앙에는 사각의 화강함 석함으로 된 반구형의 분묘가 설치되어 있다. 이 탑의 높이는 3.6m, 폭은 8m, 중앙 문형의 높이는 5.5m, 좌우 문형의 높이는 3m, 화강석 바닥면적은 165㎡이다. 석재는 오석, 표면은 황등석이다. 아치 문형은 화강석이다.

탑의 전면에는'무명용사영현', 후면에는 '이곳에 겨레의 영광인 한국의 무명용사가 잠드시다 단기 4288년 7월 15일 대한민국'이 각각 새겨져 있다. 단의 앞쪽 제단 전면에는 '학도의용군의 묘'라고 가로로 새겨져 있다.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입구 양쪽에는 해태상이 있다. 이 해태상은 대한민국 광복 1년 만인 1946년 8월 15일 대전역 광장에 '을유팔월십오일 기령 해방기념비'와 함께 세워졌다가 1957년 대전에서 국립서울현충원에 기증해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입구에 세워진 것이다. 기증 당시의 이유나 시기 등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현재 대전 보문산에 있는 '을유 팔월 십오일 기령 해방기념비' 의 옆면에 '1957년 5월 해치(태)석 한 쌍 동작동 국립묘지에 기증'이라고 기록되 있고, 1958년 3월 현충원이 전국 각 시·도에서 상징물 등을 받아 '시/도 공원'을 완공했다는 점과 현재 무명용사탑의 자리가 과거 시/도 공원 터였다는 점 등은 이 해태상이 대전역에 서있던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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