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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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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운암 김성숙 선생 42주기 추모식 지원(4.8)

  • 글번호o_6000000006286
  • 작성자서울현충원
  • 조회수4464
  • 등록일2011.04.08 16:40:42

「故 운암 김성숙 선생 42주기 추모식」지원

 

○ 국립서울현충원(원장 정진태)은, 4월 12일(화) 오전 11시, 임시정부요인묘역 21호에서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거행되는, 「故 운암 김성숙 선생 42주기 추모식」을 지원한다.

○ 금번 행사는 고인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애족애민정신을 기리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되었으며, 유가족, 추모객, 기념사업회 회원 등 1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 고인은 1898년 평북 철산에서 태어나, 출가하여 1919년 3월 경기 남양주 진접면 봉선사의 승려로 있을 때, 같은 승려인 이순재, 김석로, 강완수 등과 함께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라는 명의로 격문 약 200매를 비밀리에 작성하여 인근 동리에 살포한 사건으로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게 체포되어 1919년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 1920년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자 합법적 단체인 ‘무산자동맹 노동공제회’에 참석, 충북 괴산에서 일어난 소작쟁의의 진상을 서울의 본회 및 각 지방의 지회에 알리는 등 적극적 민족운동을 전개하였고,

○ 1923년 불교 유학생으로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조선의열단에 가맹, 조선총독 등 일제의 고관, 친일파 거두, 매국노 등을 암살대상으로,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경찰서, 매일신보사 등 일제의 중요기관을 파괴대상으로 삼아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다.

○ 1937년 북경에서 중일 양군이 충돌하는 ‘노구교사건’이 발생하자, 현정경, 박건웅 등과 함께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 같은 해 7월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투쟁동맹, 조선혁명자동맹을 연결하여 ‘조선민족전선연맹’을 조직하여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고,

○ 1938년 조선민족의용대를 결성, 간부로 활동하던 중 1942년 임시정부의 내무차장이 되었고, 1943년 2월 박찬익, 최동오, 유림과 함께 임시정부 외무부의 외교연구위원회 위원으로 임시정부의 대열강 외교활동 및 외교 전반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였으며,

○ 1943년 4월부터 임시정부 내에 대한민국 잠행관제가 실시되자 조소앙, 신익희 등과 함께 선전계획의 수립, 선전진행 방침에 관한 사항을 의결하는 선전위원으로 임명되었다.

○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던 1945년 일제의 항복으로 12월 1일 홍진, 조성환, 신익희, 조소앙, 이계현, 서상열 등 23명이 상해를 출발 군산비행장에 도착하였고, 이튿날 서울로 들어왔으며,

○ 혁신정당을 조직하여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69. 4. 12. 별세하여 2004. 7. 28. 임시정부요인묘역 21호에 안장되었으며,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현충원은 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나라사랑 정신의 계승발전에 일조하는 관련단체의 추모행사를 지속적으로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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