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동휘 선생 76주기 추모식(1.27)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일제와 연대한 러시아가 재러 한인의 민족운동을 탄압하자, 이종호 등과 더불어 중국 왕청현(汪淸縣)의 한인촌으로 거점을 옮겨 대전무관학교(大甸武官學校)를 설립,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 1917년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가 볼셰비키에 가담하였으며, 1918년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조직하였고, 1919년 중국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에 취임한 뒤, 사회주의운동 확산을 위해 전력하였으며, 1922년부터 1924년까지 상해와 연해주를 주 무대로 국민대표회 집행위원과 국민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였고,
○ 1926년 고려혁명당 등의 조직을 주도하면서 무장투쟁노선과 사회주의 혁명노선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27년부터 1929년까지 블라디보스톡에서 혁명운동가 및 그 가족의 구원을 사명으로 하는 국제혁명운동희생자구원회 조직지도원, 1930~1935년까지 변강국제혁명자후원회 간부로 활약하였다.
○ 고인은 1935년 1월 31일 향년 62세로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서 서거하여, 2007년 1월 31일 무후선열제단 60호에 위패로 봉안되셨으며,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앞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나라사랑 정신의 계승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관련단체의 추모행사를 계속하여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