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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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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 이동휘 선생 78주기 추모식 지원(13.1.30)

  • 글번호o_6000000038121
  • 작성자선양팀
  • 조회수2532
  • 등록일2013.06.03 10:55:03

「성재 이동휘 선생 78주기 추모식」지원

◦ 「성재 이동휘 선생 78주기 추모식」이  1월 31일(화) 오후 2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성재 이동휘 선생 기념사업회’주관으로 거행된다.

◦ 본 추모식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업적과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자 기념사업회 회원, 하빈 이씨 대종회 회원, 추모객 등 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 고인은 1873년 6월 20일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 1935년 1월 31일 향년 62세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서 서거하여, 2007년 1월 31일 무후선열제단(60호)에 위패로 봉안되었으며,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고인은 1891년 18세 때 상경하여, 1895년 한성무관학교에서 수학한 뒤 1902년부터는 강화도 진위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06년 대한자강회 결성에 관여하였고, 1907년 고종황제의 헤이그밀사 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옥고를 치렀다.

◦ 1908년 이동녕․안창호․양기탁 등과 신민회를 조직하여 계몽운동과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황해도 무의도에 3년간 유배되었으며, 1912년 가을 북간도로 망명, 김립 ․ 계봉우 등과 함께 광성학교를 설립, 민족주의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 1913년 러시아 연해주로 거점을 옮겨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을 중심으로 조직된 권업회(勸業會)에 가담, 이상설․신채호 등과 ‘독립전쟁론’에 입각한 민족해방투쟁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일제와 연대한 러시아가 재러 한인의 민족운동을 탄압하자, 이종호 등과 더불어 중국 왕청현(汪淸縣)의 한인촌으로 거점을 옮겨 대전무관학교(大甸武官學校)를 설립,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 1917년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가 볼셰비키에 가담하였으며, 1918년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조직하였고, 1919년 중국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에 취임한 뒤, 사회주의운동 확산을 위해 진력하였으며, 1922년부터 1924년까지 상해와 연해주를 주 무대로 국민대표회 집행위원과 국민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 1926년 고려혁명당 등의 조직을 주도하면서 무장투쟁노선과 사회주의 혁명노선에 입각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27년부터 1929년까지 블라디보스톡에서 혁명운동가 및 그 가족의 구원을 사명으로 하는 국제혁명운동희생자구원회 조직지도원, 1930∼1935년까지 변강국제혁명자후원회 간부로 활약하였다.

◦ 국립서울현충원(원장 김형기)은 일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과 가르침이 우리 국민과 후손에게 계승 ․ 발전될수 있도록 이번 행사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끝>

  • 130130-성재 이동휘 선생 78주기 추모식 지원(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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