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Navigation

국립서울현충원

게시판 뷰

「운암 김성숙 선생 44주기 추모식」 지원

  • 글번호o_6000000038128
  • 작성자선양팀
  • 조회수2555
  • 등록일2013.06.03 11:17:35

「운암 김성숙 선생 44주기 추모식」 지원


 


◦ 「운암 김성숙 선생 44주기 추모식」이 4월 12일(금) 오전 11시, 현충관에서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거행된다.


◦ 본 추모식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업적과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자 유가족, 추모객, 기념사업회 회원 등 2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 고인은 1898년 3월 10일 평북 철산에서 태어나 1969년 4월 12일 향년 71세로 서울에서 별세하여 경기도 파주에 모셨다가 2004년 7월 28일 임시정부요인묘역(21호)에 안장되었으며,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고인은 1919년 3월 경기도 남양주군 진접면 봉선사로 출가하여 같은 승려인 이순재, 김석로, 강완수 등과 함께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라는 명의로 격문 약 200매를 비밀리에 작성하여 인근 동리에 살포한 사건으로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게 체포되어 1919년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 1920년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자 합법적 단체인 무산자동맹 노동공제회에 참석, 충북 괴산에서 일어난 소작쟁의의 진상을 서울의 본회 및 각 지방의 지회에 알리는 등 적극적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 1923년 불교 유학생으로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조선의열단에 가맹, 조선총독 등 일제의 고관, 친일파 거두, 매국노 제거활동과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경찰서, 매일신보사 등 일제 중요기관의 파괴 활동을 전개하였다.


◦ 1937년 북경에서 중일 양군이 충돌하는 ‘노구교사건’이 발생하자, 현정경, 박건웅 등과 함께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 같은 해 7월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투쟁동맹, 조선혁명자동맹을 연결하여 조선민족전선연맹을 조직하여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다.


◦ 1938년 조선민족의용대를 조성, 간부로 활동하던 중 1942년 임시정부의 내무차장에 선임 되었고, 1943년 2월 박찬익, 최동오, 유림과 함께 임시정부 외무부의 외교연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 1943년 4월부터 임시정부 내에 대한민국 잠행관제가 실시되자 조소앙, 신익희 등과 함께 선전계획의 수립, 선전진행 방침에 관한 사항을 의결하는 선전위원으로 임명되었다.


◦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던 1945년 일제의 항복으로 12월 1일 홍진, 조성환, 신익희, 조소앙, 이계현, 서상열 등 23명이 상해를 출발 군산비행장에 도착하였고, 이튿날 서울로 들어왔으며, 혁신정당을 조직하여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 국립서울현충원(원장 김형기)은 일생을 조국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과 가르침이 우리 국민과 후손에게 계승 ․ 발전될 수 있도록 이번 행사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끝>


 

  • 130411_김성숙 선생 44주기 추모식(9).hwp

06984 서울동작구 현충로 210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 TEL 02-748-0114, 02-813-9625 / FAX : 02-822-3762

copyright(c) 2018 Seoul National Cemetery .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