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묘역의 면적은 총 7,517m²로 중앙에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및 임시정부 요인, 무후순국선열을 통틀어 추모하는 충열대가 있다.
독립유공자 묘역에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의병활동, 독립투쟁 등 항일운동을 펼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212위와 배우자 애국지사 13위를 포함하여 총 225위가 안장되어 있다. (2023년 11월 말 현재)
1906년 을사5적 처단을 시도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한 기산도, 상해의열단 소속으로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김상옥,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민중계몽운동을 벌인 서재필, 친일 외교고문인 미국인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를 미국에서 척살한 장인환과 전명운, 3·1운동에 참여한 이종일·권병덕·라인협 등 민족대표와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애국지사가 안장되어 있다.
그리고 캐나다인 프랭크 W.스코필드 박사는 항일 독립운동을 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고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되었다.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는 영국 태생으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세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교에서 강의하던 중 1916년 11월 캐나다장로회 선교사 자격으로 부인과 함께 내한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을 가르쳤다.
1919년 3월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한국인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기록으로 남기며, 일제의 비인도적 한국인 탄압에 맞서 싸웠다. 특히, 일제가 자행한 화성 제암리교회 학살 방화 현장과 수촌리를 방문하여 사진을 찍어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스코필드는 같은 해 5월 직접 서대문형무소를 찾아가 당시 수감되었던 유관순 등을 면회한 후 총독부 고위 당국자에게 고문과 비인도적 만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한국의 상황에 대해 각국 언론에 동정과 지지를 호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