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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번호
- 6087
유격부대전적위령비
- 작성일
- 2013.06.28
- 수정일
- 2022.11.17
- 작성자
- 현충원
- 조회수
- 1735
비의 중앙에는 유격부대원들의 투쟁 모습을 그린 조각이 있고, 조각 위로는 당시 유격 부대원들이 쓰던 것과 같은 철모와 소총이 걸려 있다.
비의 앞면에는 좌측에 유격부대 약사와 우측에 비문, 비의 뒷면에는 한국 반공유격대 참전부대명과 유격전 약사(略史)가 각각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철근콘크리트 골조에 화강석 판석을 붙여 건립되었다. 높이 4.2m, 폭 8.4m, 화강석 바닥 면적은 165㎡ 로 남산미술원 이일영 원장이 설계·제작하였다.
유격부대 전적비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 중 자유와 평화를 위해 북한 지역 곳곳에서
유격작전을 전개하다가 조국의 수호신으로 산화한
유격 부대원들의 고귀한 희생과 빛나는 업적을 기리며
그 영령들을 길이 추모하기 위해 여기에 이 비를 세운다.
후면에 기록된 유격부대 약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유격부대 약사
(1) 한국 반공유격대는 한국전쟁의 역사와 함께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을 개시하자 북한 지역 및 38도선 접경지대에 거주하던 많은 청년과 학생들이 지하로 은신, 도처에서 반공투쟁 단체를 조직하여 무장 봉기를 감행하였다. 특히 950년 12월부터 1953년 7월 휴전이 이뤄질 때까지 동·서해 연안도서 및 내륙 지역에서 자유의 의병으로 유격작전을 전개하였다.
유격전에 참전한 병력은 무려 4만여 명에 달하였다. 이들은 공산군 1개 군단 이상을 견제하는 전략 가치가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1개 사단 이상에 해당하는 병력 및 장비에 치명타를 주는 한편 군사 정보 수집, 공수 특공작전, 조종사 구출, 동·서해 제해권 확보 등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 부대는 휴전 후 국방부 제8250부대로 통합되었다가 1954년 2월 육군부대로 편입되면서 발전적 해체를 보았다.
(2) 영도 유격부대는 동해 3도 출신 반공 청년들을 규합하여 유격대를 창설하였다. 부산 영도에 본부 기지를 두고 1950년 8월 부터 12월 5일 해체될 때까지 900여 명의 대원들이 공중과 해상으로 동해 내륙 북부지역에 침투, 적의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군사 정보를 수집·제공하는 한편 반공 애국자들을 규합 또는 구출하는 등 적의 군사 활동을 견제하거나 교란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3) 호림 유격부대는 한국전쟁 발발 이전에 육군 특수임무 부대로 편성되어 북한군의 남침 흉계를 사전에 분쇄하는 임무를 띠고 강원도 북부 지역에 침투, 한국 초유의 유격전을 전개하여 적의 군사 활동을 견제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